주민자치의 빅 브라더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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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의 빅 브라더가 온다
  • 주민자치뉴스
  • 승인 2019.09.04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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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가 천막 안으로 코를 들이밀면 머지않아 그의 몸이 따라 들어온다
전상직 한국자치학회 회장.
전상직 한국자치학회 회장.

1984년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조지 오웰의 '1984'를 읽고는 절대적인 권력을 지닌 통치자 '빅 브라더(Big Brother)'가 모든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히 감시하고 통제하는 전체주의에 대해서 아시르 주의 관료인 압둘라와 장시간의 대화를 나눴다. 당시 한국은 전두환 정권이 집권하고 있었다. 바로 빅브라더였다. 둘 다 외국어인 영어로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문장으로는 정교할리 없지만 대부분은 이심전심으로 말하고 들을 수 있어서 자못 진지했다. 지배체제가 자행하는 온갖 억압과 속임수에 저항하지만, 결국 비참하게 파멸하는 한 시민의 모습에 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압둘라는 '낙타가 천막 안으로 코를 들이밀면 머지않아 그의 몸이 따라 들어온다'는 속담을 소개하면서 의미 있는 한마디로 마무리 지었다. "목적지에 도달하고 싶다면 최고의 낙타를 손에 넣아라."

1999년 김대중 대통령은 주민자치를 과감하게 도입해 근린(近隣)을 관료의 행정이 아닌, 주민의 자치로 경영하도록 맡기는 획기적인 혁신안을 발표했다. 가장 먼저 관료들이 반대했다. 자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학자들도 주민자치에 대해서 충분히 연구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는 시간을 두고 필요한 조사를 하고 충분히 연구해서 실질화 방안을 수립해야 했으나, 그러지 않고 쉽게 포기했으며 관료들과 이기적으로 타협하고 말았다.

주민자치회가 아니라 주민자치위원회로 만들어 주민으로부터 격리시키고, 읍·면·동장이 위촉하도록 해 무력화하고 자문역으로 만들어서 무능화했다. 읍·면·동장에게 맡겨진 주민자치위원회는 읍·면·동장의 수요에 따라서 기부금 제공과 행사 참가를 강하게 요청받았으며, 실제로 기부금을 제공하고 행사에 참가하고 봉사하는 것을 주민자치위원회의 사명으로 요구받았다.

주민자치위원회 실패 원인

주민자치위원회가 실패한 근본원인은 주민과의 관계가 전혀 없어서 주민의 자치로 출발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위원은 주민이 선출할 수도 없고, 주민자치위원회에 주민이 참여할 수도 없었다. 따라서 주민자치위원회는 주민을 위해서 일하지도 않았고, 위원은 주민의 뜻을 살피지도 않았다. 필패할 수밖에 없었다. 읍·면·동에는 통·리가 있다. 유급의 준공무원인 통·리장이 지역을 미리 점유하고 있어서 주민자치회의 근거를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주민자치 정책을 수립하면서 행정구조 조정이라는 임무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주민자치의 주된 걸림돌인 읍·면·동과 통·리를 먼저 구조 조정해야 했다.

읍·면·동의 구조 조정이 어려우면, 통·리의 구조를 통회 혹은 리회로 주민자치회화하면서 기존의 통·리도 살리고 자치도 살려야 했다. 그렇게 하면 읍·면·동은 행정의 계층에서 통·리는 마을의 계층에서 조화로운 자치를 발전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주민자치위원회는 빗나가고 실패한 정책이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적했다. 잘못된 정책으로 많은 문제들이 생겨났다. 첫째, '주민자치'라고 이름을 붙여 놓고도 읍·면·동장이 지배하도록 한 것이다. 둘째, 주민자치라고 이름을 붙여 놓고도 의회에서 조례로 통제하도록 맡긴 것이다. 셋째, 자치하는 주민들이 아니라, 행정에 협력하는 주민만이 위원이 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주민자치는 주민이 해보지도 못하고, 자치도 해보지도 못하고 망하고 말았으며, 지금도 심하게 겉돌고 있다, 그 후유중은 상당히 오래갈 것이다.

쇠귀에 경 읽기

자치분권법에 따라서 주민자치회를 시범실시하는 행안부는 지난 12년간의 경험을 분석하고 평가해 성공할 수 있는 재도로 수립해야 했다. 그러나 행정안전부는 실패한 주민자치위원회 제도를 그대로 답습해 주민자치회 시범실시를 하겠다고 했다.

분노한 필자는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주민자치에서 '위원회'와 '회'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회는 회답게 만들어야 한다. 쇠귀에 경 읽기였다. 시범실시 조례대로 시행하면 실패가 명확하다. 더 연구하자고 제안했으나 강행하고 보기 좋게 실패했다. 행정안전부는 주민자치회마다 담당관과 컨설팅 교수도 배치했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참담하게 실패했다. 1999년 주민자치위원회 정책의 후유증으로 시범실시 주민자치회, 서울형 주민자회, 충남형 주민자치회가 태어났다. 조지 오웰이 1984에서 말한 절대적인 권력을 지닌 통치자 빅 브라더(Big Brother)가 주민자치에 나타난 것이다. 주민자치지원단이 나서서 시·군·구 주민자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하며, 주민자치지원관이 나서서 주민자치회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주민자치의 빅 브라더를 박원순 서울시장이 먼저 만들었고, 대전시의 허태정 시장이 뒤따라 만들고 있다. 주민자치는 사면초가에 빠졌다. 관료가 행정으로, 의원이 조례로, 정치가는 권력으로 짓이기는 가운데, 이제는 단체장과 정당의 야합으로 주민자치지원관이 주민자치를 짓이기러 가세했다.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낫과 죽창을 들고 있는 동학 농민들에게 일제가 미제 개틀링 기관총을 겨누던 우금치 전투가 불길하게 상상된다.

친구는 백명이라도 적은 것이요, 적은 한명이라도 많은 것이다. 시범실시라는 편법으로 주민을 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을 이제는 멈추고, 주민자치를 자치분권법에 정해진 대로라도 주민에게 돌려놓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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